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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불법우주인


작년 달기지에 처음으로 민간인이 정착하러 갔을 당시를 기억한다. 수많은 기자들과 군중에 둘러쌓여서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던 그들, 다시 돌아올지 어떨지 모른다며 인터뷰를 하던 사람과 달에서 태어난 최초의 아이를 기대해달라는 부부. 지구에선 2류 축구선수였지만 달에서는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겠다던 사람까지. 포토라인과 우주왕복선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모두 훈련을 받았고 자랑하듯이 우주복을 입고 헬멧은 팔과 몸 사이에 끼운 상태로 여유로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내 표정은 어땠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감정은 기억난다. [부럽다] 달에서의 적응을 위해선지 다들 몸매도 좋고 생존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이 여유가득한 사람좋은 웃음에 앞으로의 달 생활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찬 눈빛.


백여명이 넘었던 것 같았는데…, 비슷한 옷을 입고도 어찌 그리 개성이 넘쳐 보이던지. 그 안에 섞여있는 내 모습은… 아 그게 가장 튈 것 같네 우주복을 입은 거지는 쉽게 상상하기조차 힘드니까 말야. 지금 내 모습처럼.


“사이즈가 딱 맞는구나. 무겁지는 않니?”

“버틸만 해요.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그러마. 렌즈는 깨져있지만 최대한 잘 찍어주마.”

‘찰칵’


짐 할아버지가 렌즈가 고장난 폰으로 나를 찍어줬다. 그 순간 어떤 마음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바로 달에 가겠다는 마음.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결심을 했다. 달기지로 가는 많은 일원 중에 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짐 할아버지에게 내 생각을 얘기하니 전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어주셨다.


“다음 주에 3차 이주민들이 달에 간다는 구나. 4차는 내년이라는데 정말 갈 생각이니?”

“짐짝처럼 숨어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타이탄호가 너무 넓어서 분명히 숨어있을만한 곳이 있을거에요.”

“잃을 게 없는 우리니까 말이다. 사실 이 늙은 나도 우주에 가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내 꿈도 대신 이뤄주길 바라겠네.”


죽은것과 다름없던 내 삶에 이런 열정은 처음이었다. 우주복을 갖게되니 내 바로 앞에 우주선이 있는 것만 같았고 정말로 달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구에서 없는 사람으로 사느니 달로 가자. 가서 어떻게든 살아보자. 지구거지보다는 달거지가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사상 최초로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불법으로 넘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괜찮은 정보를 알아냈다. 이번에 타이탄호의 탑승 인원은 자그마치 300여명으로 사상 최대의 인원이라는 것. 그 중에 시민권을 사서 가는 인원이 100 여명을 조금 넘고 나머지는 과학자, 여러 분야의 전문가 등 지구에서 살아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 중에 나보다 가난한 자도 없고 보통 부자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듯 하다.

플랜도 완벽하다. 포토라인에 설 때, 짐을 싣는 척 하다가 짐칸에서 나오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깐 말이다. 그리고 짐칸에 예비 우주복 진열대가 있으니 진열된 우주복인척하고 있으면 되니까… 잡지에서 본 타이탄호 내부를 자세히 본 게 도움이 되었다.  짐 할아버지와 멀리서 지켜보겠다는 말로 작별을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유명인들도 꽤 보인다. 정말 평범해보이는 사람도 보인다. NASA 직원이 한명한명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몃 바쁜척 짐을 옮기는 쪽에가서 눈치껏 우주복 진열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보안 검사가 끝난 상태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허술하게 통과했다. 어서 떠라, 비행선이 발사하면 성공이다.

모두가 안전하게 자리에 앉았을무렵 나는 누구보다 비정상적으로 발사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굶는 것 아픈 것을 참는 건 익숙하기 때문에 걱정이 안됐으나 발사 중력을 안전벨트없이 받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짐칸에 많은 사람이 왔다갔다했지만 다행히 검은 헬멧 속 내 얼굴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외부와의 소리가 차단된 상태로 우주선의 엔진이 가동을 시작했다. 우주복 고정벨트에 의지해서 우주선이 뜨는 느낌이 든다. 엄청난 중력이 느껴진다. 사고가 나서 터진 첼린저호가 그 순간 생각났다. 뭐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주왕복선이 출발하기 전에 들키는 일인데 그건 성공했으니 희열이 느껴졌다. 물론 믿겨지지 않았다. 바깥을 볼 수도 없고 상상만으로 내가 우주로 가고있는 걸 느낄 수밖에 없는데 창문을 통해 지구를 볼 수 없는 한 그건 무리인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내 몸의 자극이 줄어들고 심장이 둥실 떠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무중력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확인할 수 없지만 나는 지구에서 너무 많이 점프해서 감당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앞을 살펴보니 자그마한 먼지가 둥실 떠있었다. 이게 무중력인가 생각하다가 이내 지구에서도 먼지는 공중에 떠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별거 아니구만 생각했다. 그리고는 짐칸에 떨어져있던 스패너가 어느새 둥실 떠있는 것을 보고서야 우주에 왔다는 것을 비로소 체감했다. 방금까지 지구의 흔한 거지였던 내가 어느새 우주에 와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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